자살할 권리

2020. 10. 4. 15:45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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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리자는 개인의 죽음에 대한 선택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죽음에 대해서도 권리가 있을까.

 

 

 

<제럴드 모이라, 조용한 음성, 1898>

 

 

푸코에 의하면 오랜 시간 동안 삶과 죽음은 군주의 권력이었다. 지배자는 죽일 권리를 보유함으로써 삶에 대한 권리를 행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죽음을 피하게 되는 이유는 죽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불안요인 때문이 아니라 힘의 방향이 죽음으로부터 삶으로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자살'은 군주의 죽음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에 속했지만 19세기 이후 '자살'은 개인적, 사적인 죽을 권리에 속하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은 정당한 권리일까.

 

 

 

<피오트르 스테츄이크스, 아틀리에의 유령, 1883-1885>

 

 

우리는 주변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들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고, 증가폭도 높다. 죽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사람, 죽음을 시도하려는 사람, 이로 인해 돌봄을 받고 있는 사람 등은 모두 경계선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위기상황에 처해 있으므로 도움이 필요하다. 즉 주변의 작은 관심이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정신병리의 근원은 인간관계에서 유래되는 것이며 성격은 인간관계의 상황에서 분명해진다."

설리반

 

 

 

<알폰스 무하, 황야의 여인, 1923>

 

 

자살의도를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뒤르케임은 '자살론'을 통해 사회적 변동요인이 자살률을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그는 사회적 맥락에서 자살을 논의한 최초의 학자이다. 프로이트가 자살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았다면 뒤르케임은 사회적 환경 속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 사회학적 관점은 자살의 변동요인을 밝히는 데 유용하고, 자살예방정책을 수립할 때도 적용될 수 있다. 사회학적 관점은 분명하게 자살을 감소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지만 자살의 원인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똑같은 사회적 환경 속에서도 개인의 행동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인지심리학은 개인의 절망감을 자살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므로 개인이 느끼는 부정적 감정을 인지하고 스스로의 변화를 통해 원인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유도한다.

 

사회적 지지망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드워드 오쿤, 파가니니의 죽음, 1898>

 

 

"기쁨과 비탄은 섬세하게 조직되어 있다."

윌리엄 제임스

 

 

자살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드넓은 바다 위에 홀로 떠있는 조각배처럼 고립감을 느낀다. 실업, 독신, 이혼, 별거 등은 고립감을 증가시킬 수 있는 요인들이다. 그러므로 고령인 사람, 사별한 사람, 이혼한 사람,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 등은 자살위험이 높아진다. 이러한 요인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살로 이어지는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노인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다.

 

어린 시절의 학대, 정신장애, 가족력 등도 자살위험을 높인다.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은 사람은 스트레스 지수가 높고, 자살이 아니더라도 평균수명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그 스트레스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 사람에게서만 그러한 공식이 적용되었다. 그러므로 인지의 재구성은 부정적 요인들을 긍정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심리학자 벡은 심리적 변인은 치료자의 개입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리적 변인에는 절망감, 자살 관련 인지, 높은 충동성, 문제해결능력의 부족, 완벽주의 등이 있다.

 

 

 

<제임스 앙소르, 비탄에 빠진 소녀, 1882>

 

 

벡은 우울증보다는 절망감이 자살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울증이 자살시도의 중요한 지표이기는 하지만 우울증 환자의 대부분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지 않는다. 주요우울장애의 약 15%만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보고되었다.

 

우울증의 특징 중 하나는 절망감이다.

 

우울증상의 정도와 상관없이 절망감은 높은 수준의 자살의도를 나타낸다. 절망감은 자살위험을 3배 이상 높인다. 그러므로 절망감이 만성화되면 가장 강력한 자살예측인자가 된다. 자살자의 80%는 최근 3개월 이내에 직업 관련 문제, 가족갈등, 신체의 질병, 금전적 문제, 실업, 별거, 가까운 사람의 죽음, 가족의 질병 등을 경험했다.

 

 

"나의 감정은 나의 소행이다."

로버트 솔로몬

 

 

 

<오토 딕스, 일곱 가지 죽음에 이르는 죄, 1933>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고난을 겪는다. 때때로 절망감이 밀려들기도 하고, 분노에 휩싸이기도 하고, 술에 의존하기도 하고,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기도 하고, 살아갈 이유를 잃기도 한다. 이러한 요인들이 켜켜이 쌓여 마음 속에 고이고 어떤 사건이 촉매제가 되면 자살의도가 발화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하지 않는 이유를 찾아보면 어떨까.

 

심리학자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데에서 시작한다. 개인의 삶은 하나의 역사이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해야 할 일이 있고, 밥을 먹어야 하며, 친구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러한 작은 조각들이 모이면 하나의 모자이크가 된다. 모자이크의 한 조각은 작아 보이지만 그것이 모여 한 개인의 역사가 된다. 그것이 삶의 의미이다.

 

 

 

<장 베로, 나쁜 짓을 저지른 후, 1890>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다."

조지 베일런트

 

 

하버드 대학교 성인발달연구를 이끌고 있는 조지 베일런트도 관계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회적 또는 가족 연결망은 자살에 대한 보호요인이다. 관계와 공동체를 통해 개인은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심리학자 리네한은 '자살하지 않는 이유 척도'를 개발했는데 48개 문항을 통해 4가지 척도를 발견했다. 네 가지 척도는 생존과 대처, 가족에 대한 책임, 자녀에 대한 걱정, 도덕적 금기 등이다. 그러므로 지금 누군가와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 종교를 믿는 것 등도 자살위험을 줄여준다. 원인을 찾자면 죽어야 할 이유보다 살아야 할 이유가 보다 명확하다.

 

 

 

<들라크루아,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 1822>

 

 

"절망의 원인은 자신에 의한 자신과의 관계맺음이다."

키에르케고르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자살생각이나 자살의도를 버리도록 유도해야겠지만 그보다는 한 인간을 자살로 내모는 절망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절망감은 결국 감정의 문제이다. 원인의 제거가 필요하지만 개인이 갖는 세상을 구조화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구조화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정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고를 들여다보고 객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절대로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내 삶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하면서 생각의 틀을 바꿔보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다. 우리는 못에 박혀 고정된 물건이 아니다.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감정의 주인은 나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다.

 

 

 

<에블린 드 모건, 절망의 감옥 속에 있는 희망, 19세기경>

 

 

"자살이란 살인의 최악의 방식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후회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J.C. 크린스

 

 

모네리자의 자살할 권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모네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김선희 등 공저, 죽음 그리고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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