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아이를 먹는 남자

2020. 9. 7. 17:44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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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리자는 자식을 먹는 남자, 사투르누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투르누스를 알고 있는가?

 

 

<고야,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 1819-1893>

 

사투르누스는 신화 속에서 자식을 먹은 아버지이다. 세상의 어떤 아버지가 자식을 먹을 수 있을까? 예술을 통해 사투르누스는 좀비처럼 자식을 먹는 존재로 표현되었다. 자식을 먹는다는 것은 자식과도 권력을 나눌 수 없다는 인간의 가장 추악한 본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꾸떼 피에르, 사투르누스, 1559>

 

사투르누스는 로마 신화에서 씨를 뿌리는 신, 시간의 신으로서 농업을 관장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크로노스이고 영어 이름은 새턴이다. 사투르누스는 토요일을 의미하는 ‘Saturday’와 토성을 의미하는 ‘Saturn’의 어원이다. 사투르누스가 지배하던 시기가 황금의 시대였다는 해석이 있어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는 잔인한 아버지였던 반면 로마 신화의 사투르누스는 부의 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안토니에 칼레, 사투르날리아, 1783>

 

사투르누스를 기리는 ‘사투르날리아’라는 축제가 있다.

 

 

12월 17일부터 시작하여 7일 동안 계속된다. 사투르날리아는 로마의 축제 중에서 가장 성대한 축제 중 하나이다. 이 기간에는 노예조차도 일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생활한다. 모든 이들이 놀면서 술을 마시고 선물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관습이 크리스마스에 영향을 주었다. 우리는 사투르누스 덕분에 크리스마스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다.

 

<루벤스, 사투르누스, 1636-1638>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사투르누스는 자신의 아이를 잡아먹는 기괴한 아버지로 그려진다. 대개의 경우에 낫을 든 노인의 모습이다. 노인의 모습은 무자비하게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인간의 광기를 보여준다. 그는 흔히 ‘시간의 노인’이라고 불린다.

 

 

<사투르누스(미상)>

 

<시간 할아버지(미상)>

 

태초의 카오스(혼돈) 속에서 '가이아'가 탄생한다. 대지를 의미하는 ‘가이아’는 자신의 아들인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아이를 낳는다. 이 아이가 ‘크로노스(사투르누스)’이다. 우라노스는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했고, 그의 폭력과 압박에 화가 난 가이아는 또 다른 아들 크로노스에게 우라노스를 거세하여 죽여버리라고 한다. 크로노스는 가이아가 준 '아다마스'라는 낫으로 아버지 우라노스의 남근을 잘라 죽인다. 남근은 힘의 상징이다. 크로노스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힘을 빼앗는다. 잘린 남근은 바다에 던져지는데 이때 하얀 거품이 생기면서 아프로디테가 탄생했다고 한다. 그리스어 ‘아프로스’는 거품을 의미한다.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는 로마 신화의 비너스로 미의 여신이다. 우라노스가 남근을 거세당하고 죽은 후 크로노스는 신들 위에 군림한다.

 

<뒤발, 비너스, 1862>

 

죽어가는 아버지 우라노스는 마지막 순간에 말했다.

 

“너도 네 자식의 손에 죽을 것이다.”

 

 

<사투르누스, 16세기경>

 

크로노스는 그 말에 큰 두려움을 느꼈다. 자신의 누이동생이자 아내였던 레아는 헤라, 데메테르, 헤스티아,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 등을 낳았다. 크로노스는 신탁이 실행될 것이 두려워 레아가 아이를 낳을 때마다 한입에 삼켜버렸다. 크로노스는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크로노스 자신도 아버지를 죽였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로부터 살해당할까봐 몹시 두려워했다. 광기는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는 자신이 낳은 자식을 삼키면서 그들이 공유했던 시간을 함께 삼켜버린다. 마치 자식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는 그렇게 하나씩 자신의 입으로 넣어버린다.

 

 

<지오반니 프란체스코 로르마넬리, 사투르누스, 17세기경>

 

크로노스가 자식을 삼키는 것은 시간의 속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시간은 언젠가는 대지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을 삼켜 버린다. 세월을 비껴갈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자식은 곧 생명을 의미하므로 서구의 낫을 든 사신의 이미지는 크로노스에게서 비롯되었다.

 

<엘사 닥스, 레아와 크로노스, 1972>

 

레아는 연달아 자식을 잃고 슬픔과 비탄 속에 살아간다. 그러던 중 레아는 여섯 번째이자 막내 아들인 제우스를 낳았다. 레아는 또다시 아이를 잃고 싶지 않아 보자기에 돌을 싸서 남편에게 건넨다. 크로노스는 그녀가 건넨 돌을 아이로 알고 삼킨다. 그녀는 제우스를 딕테 산 동굴에 숨겨서 키웠다. 살아남은 제우스는 건강하게 성장한다.

 

 

<루벤스, 제우스와 에로스, 1611-1615>

 

성장한 제우스가 중심이 되어 올림포스 신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그들의 전쟁은 10년 동안 이어졌는데 이 전쟁이 ‘티타노마키아’이다. 크로노스는 신들의 전쟁에서 패하고 아들 제우스에게 살해당한다. 제우스는 크로노스에게 그동안 삼킨 것을 토해내게 했는데 그는 역순으로 아이들을 토해낸다. 제우스는 그렇게 해서 동생들을 구해낸다. 사투르누스는 죽음 이후 지하세계인 타르타로스에 영원히 갇혀버렸다고 전해진다.

 

 

<오스마르 쉰들러, 데메테르, 19세기경>

 

제우스와 생명을 되찾은 형제들은 크로노스의 영토를 분할하여 차지한다. 제우스는 신과 인간들의 왕이 되고, 크로노스의 죽음 이후 농경의 신은 데메테르가 담당하게 된다.

 

예술가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크로노스, 즉 사투르누스를 표현했다. 그것은 사투르누스 그 자체일 수도 있고, 자신의 것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일 수도 있고, 권력에 집착하는 인간의 광기에 대한 상징일 수도 있고, 국민을 짓밟은 절대권력에 대한 은유적 표현일 수도 있다.

 

 

<이반 아키모프, 사투르누스, 1802>

 

모네리자의 자식을 먹는 남자, 사투르누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모네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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