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팜므 파탈

2020. 9. 5. 23:46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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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리자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는 세기의 팜므 파탈, 유디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유디트를 알고 있는가?

 

 

 

 

<클림트, 유디트, 1901>

 

 

 

유디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용감한 여성이다. 그녀는 때로는 연약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때로는 성스러운 모습으로, 때로는 원한에 사무친 여성으로, 때로는 고혹적인 모습으로, 때로는 영웅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1620>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맡에 있는 침대 기둥으로 가서 그의 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침대로 가서 그의 머리털을 잡은 후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오늘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한 다음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그의 목덜미를 두 번 내리쳐서 머리를 잘라내었다. 그리고 원수의 몸뚱이를 침대 밑으로 굴러버렸다. 잠시 후 유디트가 장막 밖으로 나가 남자의 머리를 시녀에게 넘기자 여종은 잘린 머리를 음식 자루에 집어넣었다.

구약 외경 18. 유디트 13장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든 유디트, 1613>

 

 

 

‘구약 외경 유디트’에는 성모 마리아에 비견할만한 영웅적인 여성 유디트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가톨릭에서는 ‘유디트서’를 제2의 경전으로 보고, 개신교와 유대교에서는 외경으로 구분한다. 유디트는 히브리어 남성 이름인 ‘유다’와 여성 이름인 ‘예후디트’에 대한 그리스어식 표기이다.

유디트의 이야기는 수 세기 동안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그들은 종종 그녀를 뮤즈로 하여 작품을 그렸다. 많은 작품 속에서 종종 유디트와 살로메가 혼동되어 전해지고 있다. 살로메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으로 타락한 여성으로 그녀와 유디트의 공통점은 치명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다.

 

유디트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 속에 다양한 서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긴장감, 유혹, 폭력, 전쟁, 아름다운 미망인 등은 우리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조르지오네, 유디트, 1504>

 

 

 

유디트의 이름은 유대인을 의미한다. 유디트는 성경에서 이름을 따온 단 네 명의 여성 중 한 명이다. 유디트의 이름 그 자체가 유대인의 정체성을 지켜내려 하는 이스라엘인들의 의지이다. 유디트는 성경에 나오는 여성들 중에서 가장 긴 족보를 가지고 있다.

 

 

 

 

<리치아노,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든 유디트, 1515>

 

 

 

유디트가 살던 시기는 기원전 2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제우스 신전으로 변용되었고, 이스라엘의 종교의식인 안식일은 금지당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로부터 독립하고자 열망했고, 유디트의 이야기는 그들의 애국심과 유대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확인해주는 유대인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인 부정확성으로 인해 유디트의 이야기가 허구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필립 반 데이크,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벤 유디트, 1726>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유디트의 이야기는 전쟁의 맥락에서 전개된다. 유디트가 쳐들어간 베툴리아는 역사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도시이다. 아시리아 군대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는 이스라엘의 베툴리아를 공격한다. 유디트의 남편은 전쟁 중 전사한다. 그녀는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만 충격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녀는 검은 상복을 입고 슬픔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낸다.

 

 

 

 

<세사리 기유셉프,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미상>

 

 

 

이스라엘은 아시리아군에 포위되고 위태로운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충성스러운 하녀와 함께 적진인 아시리아군의 진영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유디트서에서는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를 위해 몸을 씻는 행위에 대해 비난하는 구절이 있다. 유디트는 적장인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기 위해 치장을 했고 유디트의 아름다움은 그녀의 이야기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유디트는 단순히 남편을 잃은 아름다운 미망인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전사적인 이미지로 승화된다.

 

 

 

 

<클림트, 유디트, 1909>

 

 

 

준비를 마친 그녀는 베툴리아로 가서 총사령관인 홀로페르네스에게 접근한다. 그녀의 매혹적인 모습에 사로잡힌 홀로페르네스는 그녀를 연회장에 초대한다. 유디트는 군인들에게 이스라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약속하고 그들의 호감을 산다. 홀로페르네스의 신뢰를 얻어 그의 텐트에 들어간 그녀는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고 함께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잠에 곯아떨어진 그의 목을 잘라 가방에 넣어 몰래 빠져나온다. 지도자를 잃은 적진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유대인들은 유디트의 승리를 축하한다. 그들은 3개월 동안 노래하며 환호하였다고 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돌아가는 유디트와 그녀의 하녀, 17세기경>

 

 

 

중세의 서사시에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자르는 유디트가 순결한 여전사의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샤르트르 대성당에는 칼을 든 유디트가 전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경건한 미망인에서 성적인 여성으로 변모한다. 17세기의 북유럽 예술가들은 유디트를 성욕과 폭력을 즐기는 악녀로 묘사한다. 그러나 카라바조와 젠틸레스키와 같은 남유럽 예술가들은 그녀를 이단에 대항하는 교회의 상징으로 표현한다. 19세기부터는 성모 마리아의 원형에서 벗어나 여성성을 극대화한 대상으로 변형되면서 팜므 파탈의 신비로운 이미지가 강조되었다.

 

 

 

 

<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1598>

 

 

 

예술가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유디트를 상상하고 표현했다. 유디트는 성모 마리아처럼 순결한 존재이기도 했고, 남성보다 더 용감한 전사이기도 했고,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살인을 서슴지 않는 피에 굶주린 여성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예술가들의 상상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중의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보티첼리, 베툴리아에서 돌아오는 유디트, 1472>

 

 

 

모네리자의 세기의 팜므 파탈, 유디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모네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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