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부르는 여인
2020. 8. 29. 17:20ㆍ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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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리자는 죽음을 부르는 여인,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여러분은 마녀의 존재를 믿는가?
중세의 로마교황청은 절대권력을 행사했고, 절대권력의 절대부패로 인해 교황청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권위에 도전하는 무리들은 이단으로 규정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마녀로 몰려 희생당한다. 심지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도 처벌당했다.
중세는 백년전쟁, 십자군전쟁 등으로 힘든 시기였고,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래서 희생양이 필요했다. 마녀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희생양이었다. 6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마녀로 몰려 처형당했다. 화가 한스 발퉁 그린은 최초로 마녀사냥에 직접 참여했던 독일인이다. 그의 그림 속 마녀는 음탕하고, 고양이는 주술책을 읽는 존재로 묘사된다.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잔다르크도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다. 화형을 하는 이유는 죄를 태워서 영혼도 사라지게 하여 다시는 부활할 수 없게 하기 위함이다. 마녀에 대한 화형이 중단된 이후에도 낮이 가장 긴 하지에 고양이를 불태워 죽이는 관습은 지속되었다.
마녀사냥 이전에는 마법사라는 죄목으로 처형이 시작되었다. 1459년 도미니크 수도회의 조례에 위배된다고 처형된 로비네 드 볼스라는 은둔생활자를 마법사로 화형한 데서 시작된다. 그는 당연하게 잔인한 고문을 받았고 마법사라고 자백했다.
마법사(le sorcier)는 상징이나 의식을 통해 타인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주술과 주문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15세기부터는 그들의 능력이 악마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고 악마를 경배하는 사람들로 인식되었다. 그들은 악마이고 사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고양이도 악마의 무리로 취급되었다는 것이다.
신과 악마가 서로 투쟁한다는 생각은 가톨릭 세계에서 지속된다. 주로 이교도로 판단되는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악용된다.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여론의 심판을 받아 마녀로 처리되었다. 유대인 역시 그 무리에 포함되었다. 유대교 안식일인 '사바스'는 마법의 집회로 여겨졌다. 몰수된 유대인들의 사유재산은 왕실의 풍요로움에 일조했다.
“인간은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행할 때일수록 기쁨에 넘쳐, 철저하게 악을 행한다.”
파스칼
중세의 전염병, 흉년 등은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히틀러와 같은 많은 부도덕한 리더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특정한 집단에 그 원인을 돌리는 것은 사회를 안정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로 활용되었다. 민심의 흉흉함을 잠재우기 위해 유대인에 대한 생각이 악의적으로 조작되었다. 불행이 닥치면 마녀가 지목되고 어김없이 희생되었다.
왜 하필이면 여성일까?
마녀는 악마의 분신으로서 남성도 마녀로 몰려 처형당하기도 했다. 다만 여성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희생양으로서는 물리적 약자인 여성이 편리해서였을 수도 있고, 사회적 약자인 과부들과 중년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일 수도 있고, 디아나 여신과 관련되었을 수도 있다.
중세에는 고양이 여신과 동일한 여신인 디아나(그리스 신화 아르테미스)를 이교도 여신과 동일시했다. 디아나는 종종 마녀들의 여신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결정적 이유인 선악과 때문에 여성을 죄악시하는 사조가 있었다. 그래서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많이 마녀로 내몰렸다. 그리고 10세기 카롤링거 왕조의 법령집 축약본인 '카농 에피스코피'는 밤마다 악마를 만나러 빠져나가는 여성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악마의 환상과 헛것에 홀려 늘 사탄을 찾아다니는 악녀들이 고백한다. 한밤중에 말을 타듯 동물들을 타고 이교도의 여신 디아나, 그리고 숱하게 많은 다른 여자들과 함께 한밤의 죽음과 같은 정적을 뚫고, 수많은 제국들을 가로질러 간다고, 디아나가 그들의 주인이기라도 하듯이 그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그녀에게 봉사하기 위해 특별한 날 밤에 모인다고 한다."
'카농 에피스코피' 중에서
기독교가 절대적인 사회 속에서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단이라는 것은 가장 최악의 죄악으로 당연하게 치부되었다. 마법사 또는 마녀는 신의 믿음을 부정하고 악마를 받아들인 배교자였다. 마법사의 주술은 의식적 행위이기 때문에 동정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에게 자백을 강요하고, 자백하면 화형대에 세워졌다. 화형을 면할 수 있는 것이 최대한의 은총이던 시대였다. 법정의 형을 면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도 스스로 몸에 불을 지르도록 권유받았다.
마녀사냥은 사회의 불행이 누적되어 황폐해졌을 때 어김없이 나타났다. 종교전쟁, 30년 전쟁, 프롱드의 난, 악화된 경제상황, 기근,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 등은 마녀사냥을 부추겼다. 인간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에 대해 이해될만한 설명을 구했고, 그들이 바라보는 불순한 무리들은 그들의 납득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대상이었다. 살인자는 사면장을 받아도 마녀는 죽기 전까지 폭행을 당했다.
마녀사냥은 일관되게 진행된 적이 없다. 공동체에 불운이 닥치면 들불처럼 일어났다가 진정되면 다시 사그라들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마녀사냥은 즉흥적으로 행해졌고 적법하게 처리되지도 않았다. 사회의 불운은 마녀사냥에 의존해서 극복되는 듯 했고 그런 미명 하에 죄없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또 다른 의미로서의 마녀사냥이 행해지고 있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모네리자의 죽음을 부르는 여인, 마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모네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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