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의 운명, 샤갈과 벨라

2020. 8. 7. 17:53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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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리자는 샤갈과 그의 아내 벨라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몽환적인 이미지의 작품들을 많이 남긴 초현실주의 화가 샤갈은 탄생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의 페스트코바티크 둑 근처의 감옥과 정신병자 수용소 뒤에 있는 가난한 유대인 지구에서 태어났다. 그 어린 아이는 우연하게도 구유통에 눕혀졌다. 샤갈의 삶은 그렇게 시작된다. 샤갈의 집안배경 때문인지 샤갈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서를 해석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신에게 도취된 샤갈보다 더 놀라운 창의적인 상상력을 지닌 사람은 없다."

에프로스

 

 

<샤갈, 골고타, 1912 (출처:시공사)>

 

샤갈의 어머니는 화가로서의 아들의 재능을 늘 인정하고 격려했다. 샤갈에 대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샤갈에게 있어 평생을 살아갈 든든한 뿌리가 된다.

 

"어떻게 너같은 아이가 태어났을까? 너는 재능이 있어. 엄마는 알고 있어."

 

샤갈은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고, 큐비즘(입체파)에 매료되었다. 그는 사실적인 묘사를 경계하고, 실재를 그림에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구성방식으로 재창조한다. 그리고 구도의 분할을 시도한다. 그는 비논리적 사고를 통해 새로운 형태를 창조한다. 그는 공간을 여러 부분으로 분할하고, 한 공간에 이질적인 요소들을 배치시키면서 몽환적인 이미지를 구현한다.

 

 

"나의 예술은 괴상망측한 예술이고, 타오르는 사랑의 사자이다."

샤갈

 

 

1909년 고향 비테프스크에서 아름다운 여성 벨라와 첫만남을 갖는다. 첫눈에 반했지만 그녀는 보석세공을 하는 부유한 집안의 재원이었고, 그는 가난한 화가의 신분이었다. 벨라의 부모는 당연스럽게 그들의 사랑을 반대한다. 그러나 그들은 짧은 만남 이후 운명을 직감한다. 그렇게 그들의 긴 사랑이 시작되었다.

 

 

<샤갈, 검은 장갑을 낀 나의 약혼녀 벨라, 1909>
<샤갈과 벨라>

 

벨라는 모스크바에서 연기공부를 하고, 샤갈은 예술을 더 배우기 위해 파리로 간다. 그들은 4년 가량 헤어져있었지만 편지를 통해 사랑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1915년 드디어 종교의식으로 결혼식을 하게 된다.

 

 

<샤갈, 에펠탑의 신랑신부, 1938-1939>

 

‘산책’은 벨라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파랑새’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우리는 행복을 비유적으로 설명할 때 파랑새 이야기를 한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는 파랑새를 찾아헤매다가 자신의 집에 있는 그 새가 바로 파랑새였음을,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바로 행복임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 시기에 벨라는 딸 이다를 출산했다. 벨라는 행복의 절정에 있었다.

 

 

“그녀의 영감이 없었다면 나는 어떤 그림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샤갈

 

 

<샤갈, 산책, 1917>

 

1916년 무렵 샤갈과 벨라의 열정은 불타오르고 있었고,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샤갈은 벨라를 뮤즈로 하여 여러 작품을 탄생시킨다. 그의 작품은 벨라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나는 창문을 열어두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그녀가 하늘의 푸른 공기와 사랑과 꽃과 함께 스며들어왔다. 온통 흰색으로 혹은 검은색으로 차려입은 그녀가 내 그림을 인도하며 캔버스 위를 날아다녔다.”

샤갈

 

 

<샤갈, 마을 위에서, 1914-1918>
<샤갈, 생일, 1915>

 

‘생일’이라는 작품은 샤갈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그림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샤갈의 생일인 7월 7일, 벨라와의 결혼식 10일 전에 그려졌다. 꽃다발을 들고 행복해하는 벨라와 그런 벨라에게 키스하는 샤갈이 보인다. 그들은 너무 행복해서 공중으로 떠다닌다. 샤갈은 벨라에 대한 벅찬 사랑을 표현했다고 한다.

 

 

"당신은 천장까지 솟아올랐고, 머리를 숙여 아래에 있는 나를 보았지요. 나는 머리를 들어 내 위에 있는 당신을 보았어요. 다음 순간 우리는 아름다운 장식품으로 한껏 꾸며진 방을 함께 날아다녔어요."

벨라

 

 

<샤갈, 흰색 칼라가 달린 옷을 입은 벨라, 1917>

 

샤갈과 벨라는 서로 다른 배경과 성장환경을 지닌 이질적 존재였지만 평생 동안 열렬하게 서로만을 사랑한다. 아내 벨라가 죽은 후 샤갈의 삶에 다른 여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벨라만을 영원히 사랑했다. 샤갈, 벨라, 딸 이다는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똘똘 뭉쳐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였으며 그 중심에는 샤갈의 예술이 있었다.

 

 

<샤갈, 와인잔을 든 이중 자화상, 1917-1918>
<샤갈, 창가의 이다, 1924>

 

프랑스의 아름다운 전원에 사로잡힌 샤갈의 가족은 프랑스에 정착하여 작품활동을 한다. 그러나 나치의 위협으로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그래서 1941년 프랑스를 떠나 미국으로 간다. 1944년 벨라는 전염병에 결려 갑작스럽게 죽고 만다. 샤갈은 충격에 빠져 아홉 달 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딸 이다는 절망에 빠진 샤갈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 덕분에 다른 여인을 만나기도 했으나 그는 벨라를 잊지 못했다. 그 여인은 그런 샤갈을 두고 떠나버린다.

 

 

<샤갈, 이중 초상화, 1925 (출처:시공사)>
<샤갈, 한여름밤의 꿈, 1939>

 

샤갈은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칭답게 98세까지 강렬한 색채를 활용하여 독창적인 작품활동을 한다. 그의 손끝에서 아름답고 몽환적인 이미지가 창조되었다. 그가 창조한 몽환적인 새로운 세상은 이미지를 통해 영원히 살아있다.

 

“그녀의 침묵은 나의 것, 그녀의 눈도 나의 것이다. 나는 벨라가 내 과거, 현재, 미래까지 언제나 나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낀다. 벨라와 처음 만났던 순간, 그녀는 나의 가장 깊숙한 내면을 꿰뚫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가 바로 나의 아내가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샤갈

 

<함께 보기>

 

www.youtube.com/watch?v=dad09_uzwOA

<샤갈의 작품세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는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모네리자의 그녀는 나의 운명, 샤갈과 벨라의 사랑이야기였습니다.

모네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