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우울증

2020. 7. 21. 19:131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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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리자는 현대사회의 최고 관심사 중 하나인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크리스토퍼 레인은 '만들어진 우울증'을 통해 수줍음(shyness)이 어떻게 병이 되었는가에 대한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만들어진 우울증' 표지>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은 불안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것들 중의 하나라고 말한 바 있다. 불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상 속에 있을 때조차도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불안은 질병이라기보다는 걱정이나 근심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19세기 말부터 의학계에서 불안을 병적인 동요나 우울상태, 중증질환의 위험증상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악용당하거나 치욕을 겪거나 몸짓이나 말에서 도를 지나치거나 아프게 될까 두려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묘사한 적이 있는데 학자들은 사회불안증의 예로 그의 글을 종종 인용한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의 묘사는 그 사람의 행동을 한 가지 정신적 원인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것은 부당한 대우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실제처럼 보이는 가짜 증거이다. 히포크라테스는 그 남자의 행동이 주목할만 하지만 질병이라기보다는 특정한 행동으로 본다.

 

 

<대리석의 양각석상에 새겨진 현대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5세기경>

 

현대의 관점은 많이 다르다. 전문가들은 그 남자에게는 의학적 주의가 요망되는 화학적 불균형이 존재한다고 말할 것이다. 즉 세로토닌 수치가 낮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건강해야만 사교성도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과 사교성 사이에는 확실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힐리는 불안하거나 우울한 이유는 훨씬 복잡한 문제이며 심리학적, 생물학적, 사회적, 환경적 부분들이 개입한다고 말한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에 대하여'를 통해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중 앞에 처음 서서 말할 때 극심한 불안을 느끼며, 평생 그런 불안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귀도 레니, 승리자 삼손, 1611-1612>

 

헬렌 솔의 주장에 의하면 사회공포증은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성서에 나오는 삼손은 일곱 가지 사회공포증 기준 중 최소한 여섯 가지에 부합한다. 삼손은 비이성과 공격성의 특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에 이어 두 눈을 뽑히는 일을 겪게 된다면 누구든 어느 정도의 분노를 표출할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펠리시테인들에게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때 삼손이 나타나 하느님께서 자신을 통해 응답할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삼손은 괴력을 발휘하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영주 아비멜레크를 쓰러뜨린다. 승리를 축하하는 히브리인들 앞에 펠리시테 여인들과 아름다운 데릴라가 나타난다. 그들은 삼손을 축하하고 데릴라는 삼손을 유혹한다. 데릴라에게 마음을 빼앗긴 삼손은 괴력의 비밀을 털어놓고, 데릴라는 괴력의 비밀인 그의 머리카락을 자른다. 힘을 잃은 삼손은 옥에 갇혀 눈이 멀게 된다. 삼손은 신께 사죄하며 과거의 능력을 되돌려 달라는 청을 드리고, 힘을 되찾은 삼손은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삼손의 분노는 일리가 있고, 정상적인 감정의 표출이다.

 

 

<영화 '삼손과 데릴라' 중에서>

 

크리스토퍼 레인은 불안, 두려움, 우울증을 고정불변한 것으로 묘사하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1994년 '뉴스위크'는 '프로작'이 최고조로 관심을 받을 때 방심, 수줍음, 그밖의 일상의 수많은 성격적 특징이 약물로써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라는 요지의 보도를 했다. 그러한 보도내용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감정적, 사회적 문제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설명하고 단순한 치료법을 제시하는 시대적 경향을 반영한다. 피터 크레이머는 이러한 양상들을 '성형 정신약리학'이라고 우려한다.

 

정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 정상에서 이탈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것은 어렵고 중대한 과제이다. 우리는 무엇이 정당한 분노인지, 언제 그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지에 대한 암묵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정신장애 매뉴얼을 통해서만 그런 기준을 분류할 수 있을까. 한때는 정신의학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던 전혀 다른 차원의 일상적 감정들과 행동들이 현대에는 정신장애 속에 포함되고, 그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포스터>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중에서>

 

1972년 심리학자 로젠한은 공허하고, 둔탁하고, 텅빈, 쿵하는 환청이 들린다고 말하고 정신병원 입원에 성공한다. 그는 평소처럼 환자들을 돕고 글을 썼지만 정신분열증으로 진단받았고 52일 동안 입원한 후 일시적 회복으로 퇴원했다. 진짜 환자들만 그가 가짜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다시 8명의 사람들을 보냈고 똑같은 증상을 호소한 그들 중 7명은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고, 1명은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이 실험 이후 로젠한은 사이언스지에 정상과 비정상을 분류할 수 있다는 확신에 의문을 제기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 일로 정신의학계는 매우 분노했다. 이러한 상황은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묘사한 악몽 시나리오와 무섭게 닮아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주인공 맥머피(잭 니콜슨)는 감옥에서의 노역을 피하고자 정신병자로 가장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인물로서 억압된 병원의 권위체제와 투쟁한다. 그를 통해 정신병원에서 벌어지는 자유와 억압의 갈등, 일종의 권위에 압도당하는 인간의 두려움과 왜소함을 섬세하고 슬프게 표현하고 있다. 정신의학자들의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한 사람의 진단이 다른 사람의 진단과 일치할 가능성은 우연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달리, 기억의 지속, 1931>

 
모네리자의 짧게 읽는 책 '만들어진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모네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크리스토퍼 레인, 만들어진 우울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