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Ⅰ

2020. 8. 20. 14:111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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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리자는 색채의 마술사로 알려져 있는 샤갈과 그의 작품에 녹아있는 성서를 해석한 책,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초판본도 수요가 많아 구하기 힘들었고, 오히려 중고서적의 가격이 높아진 책이다. 그만큼 가치가 있다.

여러분은 신의 존재를 믿는가?

 

 

<샤갈, 하얀 십자가형, 1938>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조차도 천국이라는 달콤한 단어를 좋아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는 천국은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어떤 종류의 안식을 동경하게 만든다. 그만큼 현재의 삶이 고달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네리자는 신을 굳이 하느님, 예수님 등으로 구분하지 않고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에서 나타난 신, 그리고 절대자를 신이라고 칭하고자 한다. 가톨릭 신자인 작가 파올로 코엘료도 모든 종교는 산 정상에서 만난다고 말한다. 모네리자는 다만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렸다는 성서를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한 샤갈의 흥미로운 그림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성서는 다양한 영역의 전공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된다. 성서에는 경영학의 모든 것이 담겨있기도 하다.

 

 

<샤갈>

 

샤갈의 원래 이름은 전형적인 유대 사제 집안을 표시하는 '세갈'이었다. 샤갈은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프랑스식으로 바꾼 이름이다. 샤갈은 아주 우연하게 예수님처럼 태어나자마자 구유통에 눕혀졌다. 그리고 그의 집안은 전통적으로 유대교를 믿었다. 샤갈은 하시디즘 공동체에서 자라났다. 하시디즘은 유대 신비주의의 흐름을 반영하며, 교리보다는 체험을 통해 신을 경험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샤갈, 파란 서커스, 1922>
<샤갈, 라일락 속의 연인들, 1930>
<샤갈, 화가와 십자가, 1951>

 

샤갈은 그의 작품에서 연인, 성서, 서커스를 주제로 삼았다. 성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그림은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유대교에서는 전통적인 종교적 주제를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성서를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은 모험적인 일이었고, 그의 작품은 그의 개성만큼이나 도발적인 그림이다. 그리고 그것은 샤갈만의 신화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여러 진실이 있다. 언제나 시각이 문제이다. 우리 모두는 사고방식이 다르고, 역사도 다르고, 말과 글도 다르다. 또한 어떤 현상에 대한 정의도 서로 다르다. 우리의 체험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마찬가지로 오해의 가능성 역시 다분하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감정적인 면이 그만큼 중요하다."

디트리히 그뢰네마이어

 

 

<샤갈, 인간의 창조, 1956-1958>

 

우리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들었다. 그러나 샤갈은 아담의 원죄를 표현하지 않았고, 그 쫓겨남을 축복으로 해석했다. 신의 모습은 천사를 통해 드러난다. 유대인은 신의 모습을 그림이나 형상으로 표시하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리자인 천사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왼쪽 상단의 물고기는 초대 기독교의 상징이다. 십자상의 예수는 고난받는 유대인을 상징한다. 예수는 인간이 지상에서 최대로 실현할 수 있는 희생적인 사랑의 상징이다. 하단 오른쪽에는 연인과 아이가 있다. 이는 삼위일체를 의미하며 현실적으로는 샤갈과 아내 벨라 그리고 그들의 딸 이다의 모습이다. 또한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담은 인간이 '단순히 없어지는 아담'이 아니라 짧은 삶을 살면서 신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의무가 있는 존재로 그려져 있다.

 

 

"나는 성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성서에 대해 상상하며 꿈꾼다. 성서는 언제나 나의 시의 가장 훌륭한 원천이었으며, 여전히 그렇게 보인다. 성서는 자연의 메아리이며, 내가 전달하고자 한 것도 바로 그 비밀이다."

샤갈

 

<샤갈, 에덴동산, 아담과 이브의 파라다이스, 1961>

 

샤갈의 에덴동산에는 '모든 지식의 나무'가 있다. 이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신과 같이 된다. 모든 지식의 나무는 우주의 중심으로 표현된다. 이 나무를 지키고 있는 뱀은 처음과 끝인 알파와 오메가가 하나인 영생의 동물이다. 우리는 '모든 지식의 나무'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알고 있다. 인간이 신에게 순종하지 않은 시작점이다. 이 나무에서 중요한 것은 선악이 아니라 '모든 것, 전부'이다. 즉 '지식'이다. 아담과 이브는 신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을 먹었고, 샤갈은 이를 축복으로 해석한다. 왜냐하면 이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신의 권능을 가지고 신과 같은 아름다움을 실천할 수 있는 삶을 얻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지만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영적인 지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쫓겨남은 축복이다.

 

"나의 작품들은 한 개인의 꿈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꿈을 대표한다고 믿는다. 종교와 무관하게 누구나 내 작품에서 상냥하고 평화롭게 그 꿈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삶에서처럼 예술에서도 사랑에 뿌리를 두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

샤갈

 

<샤갈, 파라다이스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 1961>

 

위 작품의 중앙에는 천사가 있고, 왼쪽에는 '모든 지식의 나무'가 있다. 오른쪽에는 어디론가 가고있는 아담과 이브가 있다. 아담과 이브는 괴롭거나 슬퍼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들떠서 행복해하고 있다. 그들의 시선은 미지의 세상 밖을 바라보고 있다. 아담과 이브는 '모든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고, 유한한 삶이 있는 인간의 세상으로 가서 순간의 삶에서 영원의 삶을 성취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 그림에는 아담과 이브의 희망이 있다. 그들은 쫓겨난 것이 아니라 원죄의 의미에서 벗어난 것이다. 참으로 도발적인 상상이다.

 

<샤갈, 출애굽, 1954-1956>

 

샤갈은 그의 작품을 통해 독특한 성서관을 보여준다. 아담과 이브를 주제로 하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죄인과 같은 우울하고 슬픈 모습이 없다. 그들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 희망으로 가득찬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에덴동산의 천사들도 그러한 그들을 격려하고 있다. '모든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통해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을 떠나서도 또다른 방식의 에덴동산을 구현하고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대신 그들에게는 120년이라는 유한한 삶이 주어진다. 그러나 오히려 유한하기 때문에 신의 권능과 같은 능력을 아름다운 가치를 실현하는 원동력으로 삼아 인간의 가치를 보다 인간답게 구현할 수 있다.

 

모네리자의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에 대한 소개였습니다. 연작으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모네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배철현,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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