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데 왜 나는 불안한가

2020. 10. 14. 16:43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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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리자는 '우리 자신에게 말걸기'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당신은 살면서 원없이 사랑받았는가?

 

모든 인간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자리가 있다. 대개의 경우 마음속의 공허함은 양육자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에 생겨난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린 아이는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양육자의 입장을 들어보면 또 다른 사실이 있다. 그러므로 사랑은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이야기는 나의 역사 속에서 진실로 살아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마그리트, 삶의 예술, 1967>

 

 

"사랑은 사람을 치료한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양쪽 모두를."

칼 메닝거

 

 

 

세상에서 가장 이타적인 사랑은 부모가 아이에게 쏟는 사랑이다. 그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예외도 없다. 우리는 존재 그 자체로 사랑받는다. 그 사랑은 삶을 살아갈 에너지가 된다. 그래서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평생의 상처로 남는다. 그 상처는 슬픔과 원망이 되어 감정을 지배한다. 그러한 감정에 휩싸인 사람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방황하게 된다.

 

 

 

<블라디미르 쿠쉬, 가계도, 미상>

 

 

우리 안에는 기억과 감정의 방이 있다. 이것은 현실에서 보는 것처럼 물리적인 구조로 나누어진 방이 아니다. 객관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공간을 나누고 배치한다. 한 방에는 어린 내가 있고 또 다른 방에는 성인이 된 내가 있다. 그리고 해결하지 못한 감정의 주인공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방과 방 사이의 벽은 유리로 되어있어서 훤히 다른 방이 들여다보이기도 하고 불안전한 구조물로 인해 곧 허물어져버릴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방과 방 사이는 나의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다. 스스로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그 방이 상징하는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시작이다.

 

사랑은 조용히 우리를 찾아온다.

 

 

 

<쿠르베, 절망적인 남자, 1845>

 

 

심리학자 융은 '낯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이 우리 안에 스며들어 고민하게 한다면 더 풍요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완전한 삶이란 없다. 나쁜 감정과 좋은 감정을 선 그어 구분할 수도 없다. 삶은 전체로서의 통합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 불완전함을 포용하여 품고 가는 것이 삶이다. 우리가 불완전함을 따뜻하게 안아줄 때 그 아이는 우리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된다. 삶은 전체로서 끌어안는 것이다.

 

때로는 동물이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해 더 잘 안다.

 

 

 

<자유로움(출처 : pixabay)>

 

 

강아지들은 사랑에 대해서는 한 수 위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일 그 자체를 소명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일을 사랑한다. 그들은 자신의 사랑으로 인해 자신이 상처받을까 염려하지 않는다. 그냥 진심을 다해 사랑한다. 사랑을 잘 아는 그들 덕분에 인간은 그들에게 치유받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누구인가?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노력은 평생동안 지속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노력은 상황이 변하면 함께 변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지금 하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마음이 다른 방향을 향해 갈 때, 다른 환경 속에 놓일 때 변한다. 그 변화는 때로 나 자신까지도 변하게 한다. 그러므로 변하지 않는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 나의 에너지가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보이는 나'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프리다 칼로, 꿈, 1940>

 

 

"나는 너무 작지만 그대 앞에 물건으로 놓일 만큼 작지는 않다."

릴케

 

 

우리는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만큼이나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사건이다. 무엇 때문에 '내'가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무엇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 좋은 해결방법이 될 수 있다.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 중에 최악의 선택지를 그려보자. 막상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은 아니다. 물론 힘들지만 견디어 낼 수 있다. 최악의 선택지를 들여다보면 두려움은 줄어들다가 사라져 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났다면 다른 사랑을 찾으면 된다. 실직했다면 다시 직장을 구하면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강하다. 

 

 

 

<프레데릭 와츠, 희망, 1886>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살아냈고 그것이 우리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방식을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다. 기존의 것을 뛰어넘으려면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삶 안에는 아직 찾지 못한 많은 희망이 있다. 우리 앞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다.

 

모네리자의 '우리 자신에게 말걸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모네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대니얼 고틀립, 마음에게 말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