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폭하는 속물들

2020. 12. 13. 17:351일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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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대접을 받은 부자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속물근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물이 등장한다. 남루한 옷차림을 한 부르주아 내레이터는 생루 후작과 만나기 위해 고급 식당에 간다. 직원들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그를 푸대접했다. 몇 분 뒤 후작이 도착하자 내레이터는 순식간에 별 볼 일 없는 사람에서 대접받을만한 사람으로 가치가 상승한다. 지배인은 최고의 예우를 다해 그를 모신다.

 

 

푸대접(출처 : 디즈니)

 

 

 

속물의 근성

 

‘속물근성(snobbery)’은 1820년대에 영국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대학에서 일반학생과 귀족자제를 구분하기 위해 이름 옆에 ‘작위가 없다(sine nobilitate)’라고 적어놓은 관례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의미했지만 현대에는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속물이라는 말은 그 사람을 경멸하는 의도를 지닌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속물들의 행동은 지위에 대한 우리의 불안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출처 : Europa

 

 

당신이 빈털터리가 되어도 당신을 사랑할 거야.

 

이런 일은 많지 않다. 친구나 연인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어도 우리를 모른 체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지만 우리의 삶에 개입하는 일상적인 것들은 매우 조건적인 관심이다. 대개의 경우에 속물은 하나의 가치척도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한다. 속물의 독특한 특징은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속물은 분노와 좌절감을 안겨준다.

 

속물근성을 가진 사람은 내면이 아닌 외적 지위로 사람을 판단한다. 우리에게 솔로몬의 지혜가 있고 오디세우스의 책략과 꾀가 있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표지를 제시하지 못하면 우리의 존재는 무시당한다.

 

 

 

개무시(출처 : 다음)

 

 

속물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

 

속물근성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있다.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의 의견을 갈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의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있다. 그들은 열등감에 시달리기 때문에 자신은 함부로 상대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려고 기를 쓴다.

 

두려움도 세대를 따라 전해진다.

 

모든 학대행위에 적용되는 패턴이지만 속물도 속물을 낳는다. 속물근성을 지닌 사람들은 낮은 계급에 속하는 것이 재앙이라는 고정관념을 후세대에게 물려준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버리는 것이다.

 

우리와 사귀고 싶어 죽을 지경인 사람들은 우리가 사귈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두려움에서 시작된 속물근성의 순환은 중단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 병은 집단적이다. 젊은 시절 속물근성에 분개하던 사람도 나중에 속물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두려움에서 나온 이 병은 경멸보다는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깡모네리자

 

<참고>

 

알랭 드 보통,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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