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30. 21:05ㆍ1일교양
초콜릿이 좋을까, 사탕이 좋을까?
마음의 방향, 즉 취향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나를 규정하는 것의 일부이다. 똑같은 정보가 주어져도 누구는 초콜릿을 더 좋아하고, 다른 누구는 사탕을 더 좋아한다. 선택은 나를 구성하는 내 안의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가치 있게 보는가?
선호는 인간의 변덕도, 실수도, 사회적 압력에 의한 반응도 아니다. 각자가 무엇을 가치 있게 보느냐가 반영된 판단이고 그 선택에는 일관성이 있다. 그러므로 나와 다른 누군가의 행동을 나보다 못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만한 개인의 잘난 척에 불과하다.
사회가 강제하는 선택
사회는 종종 사람들의 선택을 억제하고 그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다른 선택을 강요한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더 그러하다. 종종 정책 결정자는 이상한 결정을 한다. 예를 들어 빈곤층에게 현금을 보조하기보다 푸드 스탬프를 지급하는 것과 같은 경우를 말한다. 정책 결정자는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가정을 근거로 그 결정은 정당화된다. 그런 과정에서 정작 개인의 의견은 무시된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많은 경우에 가난한 사람들을 대신해서 정책 결정자가 정해주는 선택보다 그들 자신이 내리는 선택이 더 합리적이다. 정책 결정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현금을 지급하면 필요한 곳에 돈을 쓰지 않고 엉뚱한 데 낭비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현금 대신 필요한 현물을 지원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정책 결정자는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빈곤층 남성의 TV
한 빈곤층 남성은 먹을 것이 부족하지만 “텔레비전이 식품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의 경우에는 영양섭취를 조금 더 한다고 해서 당장 배가 조금 덜 고파지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이득이 될만한 여지가 없었다. 반면 TV는 사회에서 고립된 그 남성이 만성적인 지루함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그는 TV를 선택한 자신의 선호가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TV가 있으니 돈이 더 생기면 그 돈으로는 먹을 것을 살 것이라고 말한다. 분명 그에게는 TV가 식품보다 더 긴요한 필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합리적인 것이 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개인의 의사결정이 합리적이라고 해서 그 결과가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군중의 행동은 정보폭포 현상을 낳는다. 초기 몇 사람의 의사결정에 토대가 된 정보는 이후 다른 모든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과도한 영향을 미친다.
‘좋아요’ 또는 ‘싫어요’
단 한 명의 무작위적 행동만으로도 폭포효과가 가능하다. 한 음식 관련 앱에서는 사용자가 평을 올리면 다른 사용자들이 그 평에 대해 ‘좋아요’나 ‘싫어요’를 누를 수 있다. 어떤 평에 대해 최초의 반응이 ‘좋아요’이면 다음번 사용자도 ‘좋아요’를 누를 가능성이 32%나 올라갔다. 5개월 뒤 최초의 반응이 ‘좋아요’였던 평들은 ‘싫어요’였던 평들보다 상위에 올라갈 가능성이 더 컸다. 이 앱에서 평을 본 사람은 수백만 명이나 되는데도 최초의 반응 단 하나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가 실어나르는 신호
우리의 선호는 다른 이들의 행동에 직접적으로 영향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행동은 우리의 믿음과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신호를 실어나를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서 어떤 음식점의 음식은 맛있고, 바나나 주스를 먹으면 살이 빠지고,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잠재적인 폭행범일 것이라는 위험한 판단을 내리게 될 수 있다.
ⓒ깡모네리자 (monerisa@naver.com)
<참고>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