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의 전쟁

2021. 1. 2. 18:19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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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미지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을 하곤 한다. 카렐은 인간은 미지의 것이란 말을 통해 인간은 제대로 알기 어려운 존재임을 토로했다. 어떤 이는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에 의해 인간특성이 정해진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후천적 환경요인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성장환경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형제들 간의 관계는 매우 특별한 상황이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형제들 간의 관계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자 했다.

 

 

 

부그로, 형제의 사랑, 19세기

 

 

 

맏이는 특별하다.

 

맏이는 심리적 발달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 역사적으로 맏이에게는 늘 특별하고 유리한 위치가 주어졌다. 농경사회에서 장남은 자기가 가업을 승계할 것이라는 점을 어릴 적부터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형제들에 비해 훨씬 좋은 상황에 있다. 현대적으로 본다면 그는 영끌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다. 그는 부모의 집에 대한 절대적 상속권을 가지고 있고 형제들의 우두머리이다.

 

맏이에게는 큰 부담이 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주변의 신뢰와 기대를 받고 있다. 어린 아이로서는 큰 부담이다. 아이는 늘 더 크고, 더 힘이 세고, 더 똑똑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아이가 아무런 제재 없이 이 방향으로 계속 성장하면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장남 특유의 특성을 갖게 된다.

 

 

 

바르톨로메오 만프레디, 카인과 아벨, 1610

 

 

둘째 아이는 경쟁적이다.

 

둘째는 권력과 우월성에 대한 독특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대개의 경우 둘째는 압박을 느끼며 우월한 지위를 얻기 위해 과한 노력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둘째 아이는 경쟁의식이 과하다. 눈에 띄기 위해 잠재력을 개발하고 장족의 발전을 한다. 반면 이미 권력을 가지고 있는 맏이는 다른 형제가 자기를 추월하기 전까지는 비교적 안전함을 느낀다.

 

맏이와 둘째의 전쟁

 

맏이와 둘째의 상황은 성서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의 전설에 잘 묘사되어 있다. 에서와 야곱의 아버지 이사악은 에서를 더 인정하고 사랑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동생인 야곱을 더 사랑했다. 동생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가로채고 장자의 명분도 빼앗는다.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처럼 둘째 아이는 형을 누르고 목표를 성취하든가 아니면 싸움에서 패배하여 뒷전으로 밀려나 신경쇠약에 시달린다.

 

 

 

아세레토, 이삭의 축복, 1640

 

 

아들러는 둘째 아이의 정서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의 시기심이나 무시당하는 사람들의 정서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이런 아이는 평생 너무 높은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마음의 평화를 잃는다. 그는 쓸모없는 허상을 쫓으며 진정한 삶의 가치를 간과하게 된다.

 

더 특별한 외아들

 

외아들은 주변의 공세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 부모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외아들은 너무 많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아이는 의존적이고 누군가 그에게 길을 가르쳐 주기를 기다리게 된다. 대개의 경우에 항상 누군가 늘 어려움을 제거해 주었기 때문에 어려움에 익숙하지 않다. 또한 관심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자신을 대단한 존재라고 믿기 쉽다. 중국에서 외동아이를 소황제라고 부르는 상황은 이를 증명해준다.

 

가족 내의 위치와 성격

 

아들러는 가족 내의 위치에 따라 아이의 선천적 기질이 다르게 형성된다고 믿었다.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범하는 오류 중 가장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우월욕구와 권력욕구이다. 아이가 이런 태도를 습득하면 어쩔 수 없이 그 패턴에 따라 성장하게 된다. 아들러는 이런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관점이 공동체감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공동체감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의 존립을 위해 평생 투쟁하는 사람, 삶이 곧 괴로움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잘못된 심리적 발달의 희생물이다.

 

 

 

지오반니 바티스타 토리글리아, 행복한 가족, 19세기

 

 

일등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다.

 

항상 일등이 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전체 삶의 관점에서 본다면 최고란 의미 없는 일이다. 일등이냐 아니냐는 살아가는데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일등과 최고의 원칙은 사람을 편협하게 만들고 좋은 사람으로 살 기회를 박탈한다. 아이는 하얀 도화지와 같다. 자기만을 생각하고 증오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괴물을 만들지 않으려면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깡모네리자 (monerisa@naver.com)

 

<참고>

아들러, 인간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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