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치유자

2020. 11. 14. 14:08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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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길이 닫힌다.

 

 

<윌리엄 터너, 바다 어부, 1796>

 

우리는 인생이라는 긴 길을 걸어가면서 가끔 길이 닫힌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숲속에 갇혀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아 숨이 막힌다. 한 발자국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그 순간에는 내일은커녕 한 시간 뒤의 삶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은 순례여행의 시작이다.

 

 

<존 앳킨스 그림쇼, 달빛, 19세기>

 

 

'우울'이라는 이름의 죽어있는 시간들은 흔하게 찾아오는 삶의 불청객이다. 그 어둠의 시간들은 상처와 고통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 깊고 난해하다. 수렁에 빠져 그저 허우적거릴 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거칠고 깊은 물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숨을 쉬는 순간이 조금씩 많아지면서 삶의 신비를 이해하게 된다. 강물은 밑에서도 흐르기 때문이다.

 

 

“다정하게 우울증에게 문을 열어주기 시작한 순간 비로소 나는 우울증을 집 안으로 들여서 우울증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노라 마리 엘러마이어

 

 

우울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헨리 퓨즐리, 침묵, 1801>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어둠을 부끄러워한다.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럽다고 느낀다.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수치심을 느끼며 더 깊이 가라앉아버리는 경험을 통해 세상과 단절된 나를 발견하게 될 뿐이다. 누군가는 상처를 내보이라고 말한다. 내보이고 말함으로써 치유가 될 거라고 말이다. 분명하게, 위대한 심리학자들은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드러냄의 상대가 사람일 필요는 없다. 그 대상은 또 다른 나일 수도 있고, 자연의 피조물일 수도 있다. 때로는 그냥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

 

분노도 지친다.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한 분노와 원망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해결책을 찾아주고자 섣불리 달려드는 사람들의 질문에 답할 필요는 없다. 답하는 과정을 통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은 또 다른 피곤함을 파생시킨다. 분노라는 감정을 온전히 느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역사 속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에는 논리가 없다. 분노를 억누르기만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충분히 느껴야 정화가 되고 떠나보낼 수 있다.

 

 

<델비유, 죽음, 1890>

 

 

“당신이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주의 깊게 지켜본다면, 부정적인 것들이 서서히 죽고, 긍정적인 것들이 파릇파릇하게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조해인

 

 

삶은 롤러코스터와 같다.

 

누구에게나 삶은 만만하지 않다. 모든 삶에는 정상과 바닥이 있다. 정상을 찍고 바닥을 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휴식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온전하게 그 일을 해내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어떤 부가적인 요인이 더해진다면 영혼은 수렁에 빠져버린다. 나에게 시간을 주자.

 

어둠은 삶의 의미와 소명을 깨닫게 한다.

 

 

 

<앙소르, 가면 속의 앙소르, 1899>

 

 

어둠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눈이 생긴다. 오로지 고통과 상처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 어둠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주고 진짜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해준다. 영광스러운 상처로부터 얻은 예민한 더듬이는 삶을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마음은 마음으로 부둥켜안고 이해해야 한다. 마음의 약은 마음이다. 때로는 마음도 피를 흘린다.”

정도언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것에 대해 답을 요구한다. 나와 하나가 되었던 어둠의 본성과 이름을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신비에는 결코 해답이 없다. 그것은 그냥 내게로 왔고 나는 그것과 하나가 되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때로는 그냥 받아들이는 것도 이해의 영역이다.

 

 

 

<달리, 기억의 고집, 1931>

 

 

때로는 가장자리에 서있을 때가 필요하다.

 

관계는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어둠에 잠식당한 사람에게는 관계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햇빛을 보라,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등의 아름다운 말들도 진부하게 들릴 때가 있다. 세상과 단절된 사람에게는 그런 위안들이 세상으로부터 조금 더 고립되고 멀어지게 할 뿐이다. 그냥 가만히 가장자리에 서있는 것이 더 괜찮은 방법이다.

 

내가 한 일들이 곧 내 인생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어둠의 감사함은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지 배울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나이다. 의기소침하거나 우울하거나 형편없어도 괜찮다. 그냥 나는 나로서 괜찮은 사람이다. 내가 무엇이 될 필요가 없고 무엇으로 인정받을 필요도 없다.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 이제 나는 거리낄 것이 없다.

 

 

"자유는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얻는 것이다."

고도원

 

 

 

<마그리트, 인간의 조건, 1935>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기울여보자.

 

어둠은 흔적을 남긴다. 상처가 너무 깊어서 그 흔적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흔적은 지울 수 없지만 기억은 희미해질 수 있다. 우리 안에는 참자아가 있다. 그것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자아는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없다. 우리가 타고난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길 바란다. 참자아는 참된 친구이다. 다시 길이 열리면 나의 참자아를 믿고 다시 걸어가면 된다.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우리는 알고 있네

저 강물 속에 흐르는 물살이 숨겨져 있음을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는 것처럼

침묵을 안고 수 마일을 흘러왔고 흘러갈 것을

저 강물의 말이 곧 나의 말임을

 

윌리엄 스태포드

 

 
ⓒ깡모네리자


<참고>

 

파커 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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