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은 사람들

2020. 10. 20. 15:35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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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리자는 일하기 싫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모든 근로자들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영화 '러빙 빈센트' 중에서>

 

 

우리는 진짜 원하는 것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생계의 걱정을 덜어낸 상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길을 잃은 것일 수도 있고 길을 찾는 과정에서 헤매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이 일이 있어 너무 행복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는 인간이 착각의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위대한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고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

스티브 잡스

 

 

 

<귀스타브 쿠르베, 돌 깨는 사람들, 1849>

 

 

한 연구에 의하면 직장인들이 회사에 다니는 이유의 53.3%가 '돈을 벌기 위해서'이고, 5.2%만이 '일 자체에 보람을 느껴서 일한다'라고 답했다. 우리 대다수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돈을 왜 버느냐고 물으면 결국에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결론이 나온다. 평범한 우리들은 싫지만 돈을 위해 일한다.

 

우리에게 일은 무엇일까?

 

일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을 통해 생계에 대한 걱정을 덜고 보다 안락한 삶을 꿈꾼다. 저축, 휴가, 일하지 않는 삶 등을 말이다. 그런데 휴가를 통해 우리가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조사결과 우리가 가장 행복한 때는 여행을 앞둔 일주일이다. 오히려 여행을 다닐 때의 행복도는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노레 도미에, 봉기, 1860>

 

 

평생동안 놀기만 해도 된다면 그런 삶을 선택할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호텔이 있다. 그 호텔에서 원하는 대로 마음껏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안락한 침구, 최상의 서비스, 스파, 호화로운 식사 등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단 한 가지 조건은 한 번 이 호텔에 들어가면 평생동안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놀고 먹으며 지내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죽을 때까지 놀고 먹을 수 있다.

 

 

 

<모네, 절벽 위의 산책, 1882>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근사한 조건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 왜냐하면 내 삶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사실상 그 호화로운 호텔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그 삶이 축복받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탈출을 시도하고, 원하든 그렇지 않든 남아있는 동물들의 평균수명은 1/3로 줄어든다. 출산률 또한 낮아진다. 통제력을 상실한 상황에서는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통제력은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객관적 평가보다는 내가 일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만족감을 가져다준다.

 

 

 

<잔 아셀린, 위협당한 백조, 1650>

 

 

"돈은 트로피이고 일은 게임이다."

해리 벡위드

 

 

현재의 나는 죽기살기로 노력하고 있는데 미래의 나는 왜 만족하지 못할까?

 

인간의 전두엽은 미래에 대한 상상을 담당한다. 인간의 뇌는 착각을 연출하기도 하고 속임수를 걸기도 한다. 우리의 뇌에는 마법사가 살고 있다. 인간의 뇌는 경험 전체를 있는 그대로 기억에 저장하지 않는다. 단지 중요한 몇 가지 실마리만 뽑아서 보관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 경험을 기억하고자 할 때 경험을 실제 그대로 복원하지 않고 정보를 재조합한다. 기억은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짜맞추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빈공간은 우리의 지각으로 채워넣는다. 그러다보니 내가 하고 있는 싫은 일과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근사한 일에 대한 근거 없는 비교가 가능해진다. 그리고는 뇌가 만들어낸 상상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블라디미르 쿠쉬, 발견의 일기, 미상>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 더 나은 직업은 무엇일까?

 

우리는 늘 일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직업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 그러나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설사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조차도 막상 해보고 나면 지옥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감을 잃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이는 직업을 바꾼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알아차림이 필요하다.

 

 

 

<마그리트, 신뢰, 1964>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선택한 일에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페리페테이아'이며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고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나서는 순간을 '아나그노리시스'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페리페테이아는 '급반전'이며 아나그노리시스는 '알아차림'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는 알아차림이 빠를수록 행복한 결말을 기대할 수 있고 그 때가 늦으면 파국이 온다. 우리의 직업도 이와 같다. 문제가 무엇인지 빨리 알게 되면 평안을 찾을 수 있다.

 

 

 

<피카소, 장님의 식사, 1903>

 

 

일하기 싫은 나는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직업과 현실에서의 직업은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그 차이와 나의 착각이 일하기 싫은 나를 만든다. 완벽하게 이상적인 직업은 없다. 심지어는 경제적으로 여유있고 즐거워 보이는 일조차도 말이다.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 일 속에서 의미를 찾자는 것이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해넘이 형제, 1830-1835>

 

 

모든 일은 위대하다.

 

위대한 일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속에서 사소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 일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 된다. 자긍심을 갖고 행하는 일은 더이상 일이 아니라 놀이가 된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일은 나의 친구이다.

 

모네리자의 일하기 싫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모네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

 

헬렌 정, 나는 왜 일하는가